잡다구리

1910년 8월29일, 1919년4월11일, 1919년4월13일


2016년8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립 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을 가졌습니다.

이 오찬 중에서 '대한민국의 출범' 시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광복군 출신 김영관 선생님이 "대한민국이 1948년8월15일 출범했다고 이 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으며,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 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4월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하였으며,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나라를 잃은 1910년8월29일을 너무 무관심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도 한탄하셨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수립(건국)은 언제 되었을까"라는 것에 지금까지는 정식으로 세계에서 승인을 받은 1948년8월15일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배웠고 딱히 다른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TV에서 대통령과 독립 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에서 나온 김영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작이 정확이 어디인지 한 번 더 생객해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후손들의 무관심(無關心), 무지(無知)는 역사의 가장 큰 적이라는 문구들을 많이 봤었는데, 정말 역사는 몇 년 전 그 순간들을 한 순간도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고 다시 느꼈습니다.


김영관 선생님께서 언급하셨던 날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상단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이 완전히 멸망된 날입니다.
매국노 이완용, 송병준이 일본 헌병들과 순종 황제를 협박하여, 통치권을 일본에게 넘겼습니다.


1919년 4월 11일
상해의 프랑스 조계(조약에 의해 한 나라가 그 영토의 일부를 한정하여 외국인의 거주와 영업을 허가한 땅)에서 지방 출신 대표자 27명이 참석하여 제1차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한 날입니다. 여기에서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가결되었고, 임시 의정원에서 10개조의 대한민국 임시헌장(헌법) 제정었습니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와 피선거권이 있음"
제6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교육, 납세 및 병역의 의무가 있음"
제7조 "대한민국은 인민의 의사에 의해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 나아가 인류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국제연맹에 가입함"
제8조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
제9조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함"
제10조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


1919년 4월 13일
1919년 4월 11일에 결정된 사안(국호 및 헌법)을 대외적으로 선포해 정식으로 국가탄생을 공포한 날입니다.


<2016년8월12일 김영관 선생님의 발언 전문  >

광복군 출신 김영관입니다. 정무에 바쁘신 데도, 특히 외교안보 문제, 국내 문제로 바쁘신 데도 시간을 내시어 이렇게 저희들을 오찬에 초청해 주신 데 대해서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두 가지 문제만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대통령님께 감사의 말씀, 고맙다는 말씀 드리는 것이고, 대통령님께서 관심 좀 가져주셨으면 하는 사안에 대해서 말씀 좀 드리겠습니다.
먼저 대통령께서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특히 독립운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시면서 역사교육을 강화시키실 뿐 아니라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셔서 중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 결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2014년 1월에 중국 하얼빈 역사 내에 개관되었고, 같은 해 5월에 시안에 광복군 제2지대 주둔지 터에 표지석을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상하이에 임시정부청사를 정비했고, 올해에는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개보수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발 계획을 지난 현충일 담화에서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광복군 총사령부 있던 건물도 유지?보전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한 이후 전무한 일이었고 초유의 역사적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업적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저희는 대통령께서 관심 가져 주셔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광복군 출신으로서 여기에 참석하신 독립유공자 유족들을 대신해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기념일 문제입니다. 외면당하고 관심 밖에 있는 나라 기념일에 대해서 대통령께서 관심을 좀 써 주셨으면 하는 사안입니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조그마한 기념일을 거론하는 것은, 호언장담이나 거대담론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작은 것, 모순된 것부터 하나하나 시정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그리고 기념일은 그 날에 정치?사회?문화?역사?국민의식을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둬야지 않겠나 이런 생각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국치일 문제 입니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를 잃었는데 우리는 다짐의 행사 없이 이 날을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랏일은 (안 들림)에서 교훈을 얻어서 절치부심, 와신상담 앞날을 위해서 노력해왔는데 그런 모습은 요근래 보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기념일이 있는 우리의 달력 어디에서도 이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만 보훈처나 광복회에서 인쇄하고 있는 일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10월 1일 국군의 날 말씀을 잠깐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민족상잔의 6.25 전쟁에서 기념일을 택한 모순과 불합리를 아직도 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뿌리 있는 강군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10월 1일 국군의 날은 (안 들림) 되어야지 않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안으로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뜻이 있는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을 국군의 날로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거론되고 있는 건국절 논란 문제 입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고 이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입니다. 이는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쓰라리고 아팠던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감히 말씀 드렸습니다.
나라 안팎의 어려운 문제로 바쁘신 여러분께 외람되게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은 송구스럽습니다마는 대통령께서 바쁘시더라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셨으면 하는 충정으로 감히 말씀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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